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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줘요, 토미오카씨!

 

 

 

왜인지 아까부터 제 앞에 앉아 있는 제자는 고갤 숙이고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제 집안에 들어 온지가 벌써 20분이 넘어간다. 이쯤이면 무릎을 꿇고 앉은 다리가 저려오지 않을까, 그 허벅지 위에 놓인 주먹을 쥔 작은 손을 보면 아직 앳된 티가 난다. 그 손을 뒤집으면 매일 빵을 만드느라 단련된 손바닥이 보이지만 아직 말랑한 손등은 한번 꼬집어보고 싶을 정도다. 붉은끼가 도는 머리칼이 빽빽이도 차있다. 그에 반해 얇은 목덜미는 햇빛에 비춘 솜털이….

 

“......토미오카씨.”

 

이제야 입을 때는 걸까. 숨을 크게 들이쉬느라 어깨가 들썩인다. 꽤나 비장한 얼굴이다. 분홍빛이 도는 붉은 눈동자는 언제 봐도 맑다. 그 눈동자에 제 모습이 비친다.

 

“저 장남으로서 너무 부끄럽지만... 취업에 실패했습니다!!”

 

큰 목소리보다 생각지도 못한 주제에 놀란 표정을 차를 마시며 목을 가다듬었다. 하마터면 입안에 머금고 있던 차가 탄지로 면상에 뿜을 뻔했다.

 

생각해보니 탄지로도 이제 곧 졸업을 앞둔 3학년이다. 요점은 이게 아니라 카마도가는 이미 대대로 카마도 빵집을 이어오고 있지 않나. 장남으로서 카마도가의 가업을 잇겠다고 새벽 일찍 일어나 빵을 만들던 아이 아닌가. 어째서 취업활동을 하는 거지. 다른 꿈이있던 걸까, 새로운 꿈을 찾은 건 좋은 일인데 어째서 나는 이리도 알 수 없는 마음이 드는 건지. 왜 나는 탄지로의 고민조차 모르고 있던 거지. 선생님과 제자 이전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잖아. 주말에만 들을 수 있는 이름도 불러주지 않고 말이야.

 

“탄지로.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저 가업을 잇기 전에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취업활동에 나섰지만 넣은 곳마다 다 떨어져서… 이젠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어요.”

 

그런 문제를 체육선생에게 상담해도 좋은 걸까. 진로 상담이라면 학교에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휴일에 더군다나 너와 다시 사제지간이 아닌 다시 형 동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 이틀조차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서운한 감정이 끓어오른다.

 

“그런가.”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토미오카씨!”

 

입술을 꾹 물고는 저를 올려보는 탄지로의 모습은 강단 있어 보였다.

 

“너는 제빵 자격증도 있지 않나? 같은 업종에서 일 해보는 건 많은 경험이 될 거다.”

“제가 그걸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어째서인지 미성년자라고 수습생으로도 받아주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없다. 되도 않는 거짓말이란 것쯤은 이미 자신도 알고 있겠지. 그러니 저래 슬픈 표정을 내비치는 거지.

 

“역시 이마의 화상자국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는 말했지만 탄지로가 자신의 흉터를 만지는 상실감이 가득한 손과 삐죽 나온 말랑한 입술이 자신은 여간 신경 쓰였다.

 

“사실 젠이츠도 나는 면접 갈 때 앞머리를 올리는 것보다는 내리는 쪽이 나을 거라고 조언도 해줬는데 제가 멋대로”

“그 녀석은 본인 머리나 염색하라고 해라.”

“에? 젠이츠는 이제 대학생이라고요. 하하”

 

탄지로보다 한 살 위인 젠이츠는 작년에 대학에 진학했다. 재학 중 내내 기유에게 시달리면서 풍기위원 활동도 했으니 꽤나 인상적인 학생이지 않았나싶다.

 

“탄지로 넌 제빵 아니더라도 요리도 청소도 잘하지 않는가. 그 특기를 살려서 알아보는 것도 좋다. 요즘은 전문성을 갖춘 가정방문 청소 사업 쪽도 뜨고 있다.”

“그건 싫어요!! 요리하고 청소를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걸요.”

 

그래, 탄지로는 의외로 고집이 세다. 아니 고집 보다는 확고한 거다. 장남에다가 실질적인 가장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나이에 맞지 않는 의젓함과 올곧고 지나칠 정도의 다정함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기유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조금 더 욕심을 내비 칠 수 있는 어른이자 형이고, 기유에게 탄지로는 통통한 볼 살을 갖고 있는 애다.

 

“......그렇지마는 네가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경험이 될 거다. 나도 2주에 한 번 도움을 받고 있어.”

“저... 그건 몰랐네요. 토미오카 선생님한테는 언제나 잘 마른 따뜻한 냄새가나서 궁금했어요. 여름에는 냄새 잡는 거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좀처럼 안돼서 역시 전문가는 다르네요!!”

 

조금은 도움이 됐을까, 탄지로는 ‘음,,음,,’ 거리며 골똘히 생각을 한다. 이래저래 탄지로를 보고 있자니 이젠 정말 다리가 저리지 않을까. 얇은 허리에 비해 살집이 있는 허벅지가 바지를 꽉 채우고 있다.

 

“탄지로 이제 편히 앉아라. 더 이상은-”

“아, 사실 저 다리가 너무 저려서 일어설 수 가 없었어요. 좀 도와주실래요?”

 

제 팔을 잡고 일어서는 와중에 저린 감각에 찡그리는 표정도 제 얼굴을 보며 생긋 웃는 모습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키는 여전히 자신 보다 작다. 제 귓가에 닿은 머리칼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과 다른 달달한 샴푸 냄새. 아직도 동생들하고 같은 샴푸를 쓰는 걸까. 어린 냄새가 아직 온 몸에 가득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마주한 건 오랜만이네.

 

“괜찮으면 내가 좀 더 찾아볼게. 다음에 왔을 때는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역시 기유씨는 대단해요.”

 

너는 정말 얄궂다. 이럴 때 이름을 불러주고

 

 

 

 

 

>일주일 후

 

탄지로가 낮은 탁자에 앞에 앉아 자신이 알아 온 자료와 제가 준비한 자료를 꼼꼼히 비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다리가 저린지 가끔 엉덩이를 들고 있는 모양새가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의 눈에 꽉 들어차 신경이 쓰인다. 소파를 권유했지만 바닥이 편하다며 앉은 건 탄지로다. 그러니까 왜 하필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아 있는 건지.

 

엉덩이가 토실토실하다. 살집이 많은 허벅지와 엉덩이가 제 앞에서 살랑이고 있다. 약간 두터운 후드 티에 얇은 허리가 가려졌지만 만약 가사 일을 한다면 얇은 제복을 입지 않을까, 엉덩이를 들고 바닥을 닦는 가하면 손이 많이 가는 일에 땀이 날 수도 있겠지. 욕실을 청소 할 때는 물에 젖지 않을까, 땀이나 물이 얼굴선을 따라 목덜미 그리고 쇄골에 흐르겠지. 매력적인 붉은 머리칼이 손을 따라 흐트러지고─

 

토미오카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탄지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거다. 기특하다고 칭찬은 못해줄망정 그런 더러운 상상이나 하고 있다니 형으로서도 선생님으로서도 자격 박탈이다! 아니 그렇지만 이 세상에 모든 어른들이 이상적인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혹시라도 어린애라고 얕보는 더러운 인간들이 탄지로를 강제로 탐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게 두지 않아. 탄지로는 내가 지킨다.

 

“탄지로!! 내가 널 고용하겠다!!!!!”

 

몇 번 듣지 못하는 기유의 고함에 탄지로의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너무나 놀란 탓에 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도 못하고 고개만 뒤로 돌아보자 기유는 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알 수 없는 소릴 웅얼거렸다.

 

탄지로가 곧 뒤돌아 앉아 해사하게 웃는다.

 

뭐가 지킨다는 거냐. 토미오카 네가 제일 저질이다.

 

 

 

기유는 오전 내내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매번 귀걸이를 압수한다는 목적으로 달리던 복도에서도 탄지로를 봐도 멍하니 지나쳐 버리고 수업 시간 내내 스트레칭을 시켰고 교무실에서는 무언가를 쓰다 지우길 반복했다. 반복적인 타자 소리와 움직이지 않는 동공으로 모니터만 쭉 바라보다 수업종이 치고 나서야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그가 나간 사이 켜져 있는 모니터에는 계약서가 떠있었다. 옆자리인 동료 우즈이 선생은 흥미롭게 쳐다보며 타자 위로 화려한 손가락을 가져댔다. 친절히 저장까지 해줬다.

 

계약 조건은 간단했다. 기본적인 청소를 우선으로 평일에는 학교에서 점심을 먹기 때문에 평일을 제외한 토요일과 일요일은 세끼를 만들어야한다. 식단은 중복 돼도 좋다. 카마도 베이커리 빵은 맛있으니 빵도 좋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연어무조림. 침구관리라던가 속옷은 역시나 부끄럽다. 급여는 자신이 이용하던 업체의 정기권 금액을 참고했다.

 

탄지로는 고작 두 장짜리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 내렸다. 마지막 조항까지 보고 나서 탄지로는 묘한 미소를 띠었다.

 

“저 토미오카 선생님. 아니 토미오카씨, 여기에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요. 혹시 토미오카씨의 평일 점심 도시락으로 만들어 드려도 될까요? 하게 해주세요.”

“좋아. 평소 너의 빵도 좋다.”

“아뇨. 좀 더 힘주겠습니다!! 일이니까요!!”

 

탁자를 내려치며 기합이 가득한 외침에 기유는 그저 따라 고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호칭은 더 이상 기유씨나 토미오카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기유, 아니 토미오카씨하고 저 카마도 탄지로는 갑과 을.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니까요! 그래도 저 퇴근 할 때는 기유씨라고 평소처럼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

 

기유는 이렇게 열혈한 상태의 탄지로를 보니 호칭 문제는 다음 계약 연장 때 바꾸리라 결심했다. 그때는 저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탄지로는 탁자 위에 일렬로 올려 놓인 새로 뽑은 계약서를 빤히 바라보며 케로피가 그려진 헤진 도장 파우치에서 꺼낸 도장을 인주 위에 탁탁 두드렸다. 휴지에 한번 찍어보고는 마지막장에 있는 싸인란에 도장을 꾸욱 눌렀다. 선명하게 찍힌 탄지로를 보며 기유는 그 앞에 제 도장을 찍었다.

 

이젠 우린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사이다.

 

“토미오카씨는 대단하네요. 출퇴근 시간이나 월급도 그렇고 정식 복장 조항에 넣으신 거 보면 저를 그저 위로해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걸 도장 찍고 나니까 실감이 나네요.”

“아아, 나는 언제나 너에게 진심이니까. 잠깐!! 정식 복장이라고???”

 

그건 지웠어. 물론 탄지로가 메이드 복장이라 던지 상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의 일인뿐이고 적지 않았다.

 

“여기 마지막 장에 아래서 두 번째에 있어요. 저 앞치마라던가 잘 챙겨 올게요.”

“아... 그래.”

 

입어준다면야 사양은 안하겠지만 탄지로에게 정식 복장은 그게 아닐 거야.

 

“아참! 그럼 저희 내일 학교 끝나고 청소도구라던가 장 보러 함께 가실래요? 기유씨.”

 

그래, 앞치마라도 내 취향으로 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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