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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을 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에 대해 카마도 탄지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로 그 주변의 모든 사랑하는 이들은 행복한 모습으로 서로 이어져 있었으며, 둘째로 카마도 탄지로는 아직 '첫사랑'이란 말과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없다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더불어 은밀할 일도 아니었지만, 어디에 드러내놓고 다닐만한 물건은 아니었기에 카마도 탄지로는 그에 대해 말하는 일은 없었다.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는 여기저기에 우후죽순 솟아나는 죽순처럼 사랑을 퍼붓고 다녔지만 그 누구도 주워가는 일은 없었다. 
사랑은 적선과도 같은 일일까, 길가에 피어난 오늘 처음 만난 꽃 한송이에게도 시 한 구절을 다듬어 바치는 시인들의 문자를 읽으면서 생각했고,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란 제목의 곡을 만들어 절절한 목소리로 끝을 흐느끼듯 흘려가면서 부르는 가수의 음성을 들으며 생각했고, 이따금 다른 학우들이 수업시간에 몰래 훔쳐 읽다가 빼앗기는 바람에 부끄럽게 모두의 앞에서 큰 소리로 읊게되는 연애소설의 구절을 들으면서도 생각했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는 역시나 '사랑 이야기' 였지만, 카마도 탄지로에게 있어 스스로를 파극으로 밀어넘어트릴 정도의 애끓는 감정이란, 자기 자신을 버릴 정도의 힘은 어디서 기인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당연했다. 그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일 가족에 대입해 본다면 이해는 가는 일이었지만, 피 한 방울 섞인 일 없고 단순히 감정을 비커에 넣어 두 어 스푼 섞어 휘저었을 뿐인 상대를 위해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오히려 사랑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동화 속 잠들어 있는 공주님이나 성에 갇힌 그녀를 구하러 간 기사와 왕자는 언제나 늠름한 모습으로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내었고 '그리고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문장으로 끝맺음 되엇기에, 그들이 화목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오손도손한 제 가족들의 모습과 유사할 그들의 사랑을 상상하는 일은 그다지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랑하기에 널 놓아주는 거야, 라면서 헤어지는 이들은 오히려 비겁한 겁쟁이로 여겨졌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 불러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도 깊어졌으며, 서로 행복해야 할 모습의 사랑이 어째서 죽음으로써 이루어져야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에게 가기 위해 죽었는데도 그들이 사랑하는 결말이었기에 왜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불리우고 있는지, 카마도 탄지로의 생각 안에서 해결되기엔 난제였다.

"토미오카 선생님은 첫사랑이 있었어요?"
곁에 있는 친구는 지천에 사랑을 흘리고 다니는 처지였기에 물어야 소용이 없었고, 이노스케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사랑엔 까막눈이었기에 묻기가 곤란했다. 그러니 당연히 곁에 가장 친근한 어른에게로 질문의 방향이 움직인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생각해보자면 역시 질문의 대상으로는 걸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달까, 그 역시도 그다지 사랑에 밝은 처사를 지닌 거 같진 않단 사실을 이미 말을 뱉어버린 후에야 깨달았다.
평소처럼 퇴근길에 저녁으로 삼을 빵을 사러 들어왔던 '토미오카 기유'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혹시 주머니에 동전이 있지는 않을까, 손을 꼼지락 거리며 뒤적거리던 차에 받게 된 제자의 질문은 그가 전임하는 과목과 관련이 없는 분야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대답을 위해 잠시 침묵했다. 이마가 씰룩였고, 약간의 암묵, 그는 손에 걸리는 동전이 없음을 확인하고 지갑에서 천 엔을 꺼내 내놓는다.
"그게 왜 궁금하지?"
"그러게요……? 어라, 실례되었다면 죄송합니다!"
호탕하게 대답하며 거스름돈과 함께 반듯하게 포장된 봉투를 내놓는 제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그는 휘적휘적 진열대를 지나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낮에 잠깐 쏟아진 빗줄기에 생긴 웅덩이를 보지 못하고 밟는 바람에 그의 하얀 운동화엔 검은 얼룩이 인다. 바지 뒷단이 흠뻑 젖어있다. 그는 무감각하다. 
무던하다 말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수더분하다고 말해야할지, 그는 꽤나 순수한 사람으로 평소에는 곧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이를 닦는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가다듬고, 츄리닝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고…… 정돈된 일상에 큰 변곡점을 찍지 않고 평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다지도 관심을 받지 않으면서도 그다지 미움을 받지는 않는 사람, 언제 어느 곳에나 졸업 앨범에 들어가 있을 것만 같은 사람, 어디서든 쉽게 찾아내볼 수 있는 사람, 서가에 꽂힌 수 많은 책들 사이에 늘 존재할 것만 같은 특별할 거 없는 평이하고 고전적인 문장과도 같은 사람. 물론, 그는 평범하다기에는 적절치 못한 외모의 소유자였으나, 그가 전적으로 주는 느낌이 그러했다. 화려한 미인이라기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한, 장미가 아니라 수국 같은 인상이랄까. 그 꽃잎의 수와 구성하는 선이 무수히 많음에도 한 송이의 장미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리고 마는 고전적으로는 서브 여주인공적인 미인의 형태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그는 평균 보다는 눈에 띄는 일은 당연했다.
그 역시 학창시절에는 여러 고백을 받았었다. 열 손가락을 모두 접어 꼽아볼 수 있던 해도 더러 있었으며, 고등학교에 진학 후 부활동으로 하던 검도란 재능으로 전국대회에 입상을 하고 난 이후론 심심찮게 하교 시간에 붙들리는 일이나, 책상 서랍 속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필체의 편지를 받기도 하였지만, 그 모두에게 불행하게도 그는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일단 전적으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는 흥미가 적은 사람이었다. 취미도 없었다.
저 나이엔 으레 사랑을 생각하기 마련인가? 생각해보니 자신도 그즈음하여서 '사랑'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던 것도 같다. 츠타코 누나가 결혼을 하겠다고 말해왔던 때이니 딱 카마토 탄지로의 나이와 엇비슷한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런 누나의 결혼 발표에 너무 놀라 마시고 있던 컵을 떨어트려 바닥을 우유로 흥건히 젹시고 말았다. 상냥한 누나는 전에 없던 표정으로 새하얗게 질려선 허둥지둥 바닦을 티슈로 닦으며 연신 제 이름을 불렀었다. 괜찮다는 말을 뒤에 꼭 달라붙여선. 편지에 따라가는 우표처럼 단단히 한 쌍으로. 
그는 무심하게 열쇠를 찾아 문에 꽂는다. 작은 철커덩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안은 조용하다. 하루 내 방구석에서 웅크려있었을 어둠이 새끼 강아지마냥 그를 반기며 현관으로 달려나온다. 그는 익숙하게 현관의 불을 켜 그 검은 강아지를 내쫓는다. 신발을 벗고서야 양말이 축축하게 젖어있음을 깨닫는다.
부모님이 타계하신 이후로 줄곧 단 둘이서 살아왔는데, 그런 누나의 갑작스런 결혼 소식은 아직 어린 사춘기의 소년을 동요시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적중했다. 츠타코 누나는 어째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해오는 걸까? 자신과 단둘이 지내는 생활에 질렸나? 아니면 나에게 질렸나? 나와 이제는 같이 살기 싫은 건가?
'내가 너무 성급했다면 미안해, 기유. 그렇지만 너도 만나보면 분명 맘에 들 거야.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그렇지, 확실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실에 들어서 테레비를 키고, 소파에 가방과 츄리닝 상의를 벗어두고, 양말을 벗어 세탁물을 담아놓는 통에 넣었다. 집에 돌아와선 늘 손을 씻었고, 스포츠 채널을 뒤적거리며 저녁을 먹었다. 홀로 살게 된 뒤에 생긴 습관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대학에 들어가며 독립을 했고, 정확히는 제가 난 사람이었지만, 제 생활에서 누나가 나간 버린 셈이었으니 제가 적적하다 느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매형이 된다는 그 사람과 함께 저녁자리를 가진 후 돌아오는 길에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누나, 저 사람이 마음에 들어?' 누나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응, 사랑하는 걸.' 그는 '사랑'이란 그 말에 순순히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는 몰라도 어떤 뜻인지는 사전적 정의로 알 수 있었으니까. 
그해 여름에 결혼식이 열렸고, 열흘 간의 신혼여행으로 집에 홀로 남겨진 그가 카마도 베이커리에 단골이 되었던 것도 그 시점이었을 것이다. 홀로 맞이하는 저녁은 준비하기도 벅차고, 귀찮았을 뿐더러 무엇보다 맛이 없었다. 냉장고 속에는 누나가 만들어 두고 간 반찬이나 식사 대용의 음식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지만, 그 무엇도 제 입에 맞지 않았다. 홀로 맞는 첫 날 저녁 반찬이 그 좋아하던 연어무조림이었음에도 전부 상해서 싱크대에 쏟아 버렸으니 말은 다 한 셈이다. 그렇게 사흘을 연이어 굶었다.
방과 후 평소처럼 걷던 시장에 낯선 빵집이 눈에 띈 것이 그 때였다. 저녁을 앞둔 시간엔 익어가는 노을처럼 익어가는 빵의 냄새가 거리를 부산스레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는 갑작스런 허기를 느꼈다. 그의 배에 가득 차 있던 허기는 그의 가슴을 타고 목으로, 목구멍을 넘어 혀 위로 올라탔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러나 낯선 문 앞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그는 머뭇거리고 말았다. 몸을 돌려 발을 떼려던 그때,
"어서오세요~",
하는 높은 목소리와 함께 이마 한 쪽에 옅은 흉이 자리한 어린아이가 튀어나오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그는 들어섰고,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의 참견을 들으며 빵을 한가득 골랐다. 빵집을 나서는 그의 양손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묵직한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날 그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여섯 개의 빵을 먹어치운 후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그 후론 그 빵집에 꽤나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꼬맹이가 쑥쑥 자라 제가 교사로 부임하고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긴 시간을 그는 함께 한 셈이었다.
그는 내일 아침에 먹기 위해 빵 반쪽을 남겨둔다. 채널을 몇 번 돌리다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다른 때라면 일찍이 잠에 들었을 그지만 내일은 토요일이니 이 정도의 일탈은 허용범위였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 다시 일어서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가져온다. 남겨두었던 빵을 다시 먹기 시작한다.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다음날 아침에 빵집에 가면 해결될 사소한 일이었다.
사랑, 깊은 상호 인격적인 애정에서 단순한 즐거움까지를 아울러 강하며 긍정적으로 경험된 감정적 정신적 상태로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모성애, 가족, 또는 연인에 대한 사랑이고, 그 사랑의 열렬한 감정은 육체적 변화, 행위와 동반하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말이었다. 그는 정오의 생활프로그램이 방영될 시간에 눈을 떴고, 아침을 사러 나서기 전에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생각했다. 꽤 적절한 답이었다.

빵집에 들어서자 역시나 늘 맞이하던 카마도 탄지로가 있었다. 단골이니만큼 친근함을 표시한 그는 평소처럼 갖 오븐을 빠져나온 빵과 할인이 적용되는 오늘의 빵을 알려주었다. 그는 무던하게 늘 추천받은대로 빵을 고른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잡히는 동전이 없는지 찾다가,
"생각해봤지만, 없었던 것 같다."
잔돈을 찾아 계단대 위에 올려놓는다. 네? 웃음을 함박 지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탄지로를 보며 그는 다시 말했다.
"나는 첫사랑이 없었던 것 같다."
"아……하……예에……"
"궁금했던 게 아닌가?"
"아……! 그러고보면 제가 물어봤었죠. 맞아, 그렇구나, 네에!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는 불쾌하다, 고 생각했다. 제 대답에 대해 돌아오는 그 태도가 적당치 못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는 너는?"
"저요?"
"그래.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그러게요…… 그러고보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렇군."
"네. 여기 거스름돈이요~! 오늘도 맛있게 드세요!"
"고맙다."
잔돈과 함께 봉투를 챙겨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갈 것 같아만 보였던 그는 잠시 문앞에 머물렀다.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기도 했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무표정 같아 보이기도 했다. 탄지로는 계산대를 빠져나와 진열된 빵들을 조금씩 손 보며 모양을 바꾸고 있었고, 토미오카 기유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빵 봉투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반짝인다. 빵집 천장의 전구는 노랗게 빛을 내서 공간은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카마도."
그가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다면 내게도 알려주지 않겠어."
"네? 뭘요?"
"그 첫사랑이라는 거 말이다."
"아!”
잠깐의 틈, 그리고 목소리, 그럼요, 물론이죠! 그가 말한다. 
“가장 먼저 알려드릴게요!” 
소년이 환하게 웃었다. 눈가에 작은 주름이 생기고 볼이 옴폭 패이며 한가운데 보조개가 생긴다. 그는 무심하다. 표정에 미동조차 없다. 
그는 천천히 문을 열고 가게를 나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면 여느때와 같이 테레비를 켜두고선 빵을 먹을 것이다. 오후 즈음이면 오랜만에 누나에게 전화가 올 것이며, 제대로 챙겨먹고 있냐는 잔소리와 함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밤이 되면 불을 끄고 잠에 들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더 반복하고선 맞이한 아침엔 학교에 갈 준비를 하겠지. 천천히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다듬고, 츄리닝과 가방을 챙기고, 빵집에 들를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답을, 거듭해서 오늘의 답을 들을 것이다. 그가 답을 찾을 때까지, 소년이 첫사랑을 알아차릴 때까지. 그리고 곧 그는 소년에게서 첫사랑을 배우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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