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토미오카 기유 X 카마도 탄지로 합작
*드라마CD ‘이어지는 칼 한 자루’ 내용을 포함합니다.
토미오카 기유의 고해
토미오카 기유는 생각이 그리 깊은 편이 아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실제론 그랬다. 그가 별 말이 없을 때는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스승이나 사비토로부터 넌 감정이 표정에 다 드러나니 적당히 숨기라고 몇 번이나 지적 받아왔던 그는, 아직도 자신이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 그게 자기한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어릴때부터 고독한 검사의 길-상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을 걸어온 그의 사고회로는 섬세한 외양과는 별개로 단조롭고 투박했다.
그러나 그가 원래부터 이렇게 투박한 무골성향이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타고난 성격으로 살아온 날들보다 역풍을 맞아 변해버린 성격으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기에 이젠 그걸 본래 성격이라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처음부터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람’이진 않았다. 그도 하나뿐인 누이가 살아있고 친우가 곁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잘 웃고 떠드는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한다면야, 다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변한 것도 아니지 않나? 토미오카는 자신이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자신은 여전히 미숙하니까.
변한 게 있다고 한다면 그 미숙함을 떨쳐내기 위함일 것이다. 두 번의 비극을 겪은 그는 뇌에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고 단순화 시키려 했다. 왜냐하면 뇌는 틈을 내주면 쓸데없는 작용을 하니까. 기억을 되감아 과거를 떠올려 감정을 깨우는 것으로 하여금 사람을 쓸모 없게 만든다.
[흔들리지 마라, 기유.]
모든 상황에 있어 뇌가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야만 하는 귀살(鬼殺)이라는 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상, 감정이 불러낸 찰나의 망설임은 지켜야 할 목숨조차 위태롭게 만드는 어리석음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귀살의 ‘주’가 되고 싶다면 항상 마음을 평탄하게 유지해야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본래 그는 싸움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도 아니다. 때문에 그는 인간의 신체능력을 초월한 잔혹한 오니와의 전투에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뇌의 연산속도보다 더 빠른 반사신경과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살기를 자신이 낼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끌어내려고 부 던 히 노력해야만 했다.
살생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 살생에 능숙해지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평탄히 유지하는 마음 아래 선혈한 감정을, 사념을 장작 삼아 끊임없이 불태우는 것이다. 그는 감정과 사념만큼 쓸데없고도 완벽한 원동력이 없다고 여겼다. 감정과 사념에 사로잡히는 것이 어리석다고 할지언정 이것만큼 인간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키는 수단은 없다. 자신이 그러했다. 그것은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인간을 극으로 치닫게 하고 못쓰게 된 팔다리를 강제로 움직이게끔 원초적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정이 이를 악 문 복수의 각오이든 용서하지 못한다는 열화와 같은 마음이든 피를 토하는 자책감이든 상관없다. 강하고도 순수한 분노만이 인간을 살아남게 한다.
그 신념 아래 완성된 그의 힘은, 무념에 한없이 가까운 살의였다.
토미오카의 평범했던 희로애락은 최종선별시험을 기점으로 완전히 침묵했다. 그는 머리와 육체에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는 ‘생각’이란, [오니를 절멸하는 것] 오직 이 하나만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게 당시 그가 또다시 쓰러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금이라도 육체를 쉬게 하면 기억들이, 슬픈 감정들이 쏟아져나와 제 발목을 붙들고 옴싹달싹도 못하게 만든다. 검을 쥐어야 할 순간에 힘을 빠지게 만들고, 적을 포착할 시야를 눈물로 흐려지게 만들어. 그때처럼 한심하게 기절해있느라 소중한 친우가 혼자 싸우다 죽도록 내버려둔 무지렁이가 되고 만다. 토미오카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토대로 완성한 그의 ‘평탄한 마음’은 냉정하지도, 그렇다고 온화하지도 않은 무와 정을 담은 수면이었다. 그것은 마치 늪과 같아서, 겉은 수면의 그것처럼 반듯하여 모든 공격을 받아치되 속은 검질기게 가라앉아 작은 파동조차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집어삼켰다. 그걸 삼킨 속이 어찌되는지 같은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나약하게 두지 않는 것]. [오니와의 싸움에서 두 번 다시 눈을 돌리지 않는 것]. [쉬이 눈 감지 않는 것].
자신의 최저를 경험한 그에게 남은 길은 강해지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강해졌다. 자신을 향한 자괴감과 절망감이 빚어낸 무겁디 무거운 감정은 그를 강해지게 만들었다. 강해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강하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입술이 달싹였다. 상념에 젖어있던 뇌를 깨우는 육체의 반사적인 움직임. 토미오카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멍한 머리로 순간 여기가 어디지 하다가, 낯익은 앞마당을 인식하곤 아 깜빡 잠이 들었나보군 하고 생각한다. 그와중에도 신기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자각도 못한채 선잠에 들었다는 사실이. 아무리 모든 일이 끝나 긴장감이 풀렸다곤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엄연히 지금 상황은 임무 중이거늘.
장소는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수주저택이었다. 평소 사람 드나드는 일이 적어 언제나 냉막하고 조용하니 텅 빈 소리만 나던 저택이었는데, 오늘따라 묘하게 햇볕이 잘 드는 것 같다. 어쩌면 뒤에 방의 천장을 부숴놨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저택 안을 가득 채운 공기는 햇볕이 가져온 나른함과 포만감에 물든채라 내부의 모든 생물들을 노곤노곤하게 만들었다. 그건 인간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토미오카는 담벼락 위에 나란히 줄지어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까마귀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금세 또 졸기 시작했다.
무잔 토벌을 마지막으로 귀살대가 해산한지 세 달 여가 지나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몸의 부상을 치료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그동안 갖지 못했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토미오카도 마찬가지였다. 정식으로 ‘주’의 자리를 내려놓고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저택에 돌아온 그였으나, 그는. 그는..... 이 다음부터 자신이 무얼 해야할지 몰랐다. 뭘 하는 게 좋을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일주일간은, 고즈넉한 방 안에 홀로 앉아 멀뚱히 벽만 쳐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기실, 오니로부터 자유로워질 날이 살아있는 동안 올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그였기에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걸 어떻게 가져야 할지, 무얼 하며 보내야 할지 정해놓은 게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호통재라. 내일을 보지 않고 오직 전장에서 싸우다 죽을 날만 생각하던 자의 말로란.
그는 갑작스레 얻은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식을 어떻게 쓰는게 좋을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던 그를 이끈 것은 스승인 우로코다키였다. 그는 그 옛날 어린 제자의 손에 어떻게 목도를 잡는지부터 가르쳐주었던 때처럼, 귀살에서 벗어난 제자가 세상 밖으로 첫걸음을 뗄 수 있게끔 일러주었다. 먼저 머리부터 정돈하는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 말에 토미오카는 막 말을 배운 사람마냥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이 팔로는 머리를 묶는것도 혼자선 못한다. 그는 스승의 말대로 가장 먼저 머리를 다듬기로 결정했다. 길게 자란 앞머리가 날선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장에 나가 가장 먼저 보이는 이발소에 들어간 그는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이발사에게 맡겼다. 서양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보이는 이발사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구사하며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토미오카는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간결하게 주문했다.
‘깔끔하게.’.
머리를 정돈한다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나선 길이었으나, 막상 우수수 떨어져 제 발 밑에 쌓이는 머리카락들을 보고 있노라니 생각에 안 잠길 수가 없었다. 그건 섣불리 말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생각들이었다. 오랫동안 아무렇게나 방치해두었던 머리카락을 짧게 정돈하면서 생각도 마음도 정리했을까. 값을 지불하고 이발소 밖으로 나온 그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좀처럼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에 종지부를 찍었다.
쉬고 싶다고. 평범한 사람처럼 생활하며 쉬고 싶다고. 그동안 오니로부터 눈을 감지 않고 싸워온 그의 심신은 몹시 지쳐 있었고, 그 피로를 그때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카아아아악!”
그때였다. 훈훈하게 맴도는 평온한 분위기를 쭉 찢어발기는 단말마가 터져나왔다. 바로 등 뒤에서였다. 제 팔 안에 끼워둔 검을 지렛대 삼아 기대어있던 토미오카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번개같이 반응해 진즉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튀어갔을 테지만, 오늘의 그는 공기에 녹아든 노곤함에 전염되기라도 한 듯 둔하게 반응했다. 뭐, 당연히 소리의 출처가 어딘지 알고 있으니 느릿대는 거다.
토미오카는 무거운 팔다리를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대충 10여 년 간 온몸의 근육을 잔뜩 긴장 시키고 살아왔던 그의 육신은 갑자기 찾아온 휴식이 영 달갑지 않은지 곧장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전장에 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이 인식하기라도 한 것마냥, 그동안 아픈줄도 몰랐던 관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어쩌면 이 육체가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종일지도 모른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평생 써야 할 근력과 생명을 미리 끌어다 쓴 대가일지도.
그런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등지고 있던 방 안으로 들어섰을까. 뻥 뚫린 천장으로부터 내리쬐는 강렬한 뙤약볕이 그를 반겼다. 시원한 그늘막에 앉아 온풍을 느낄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뜨거움이다. 방 한 가운데에는 뜬금없게도 두꺼운 나무 하나가 마루를 뚫고 박혀있었는데, 그 기둥에는 한 인영이 포박용 붉은 줄에 사지가 묶인 채 매달려 있다. 약간...... 뙤약볕에 말려 죽일 기세로 말이다. 햇볕을 받게 하는 게 주 목적이긴 했다.
“컥, 커헉, 헉, 허억.”
이 작품(?)을 만든 장본인인 토미오카가 거친 숨소리를 내는 인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방금 전의 단말마는 그가 내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인영의 정체는, 탄지로였다. 흡사 햇볕에 말려먹는 명태 꼴이지만, 아무튼 탄지로가 맞았다.
쉽게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포박해서 묶어놨는데 자신이 졸고 있는 동안 엄청 몸부림친 모양인지 처음에 얌전하게 매달아 두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붉은 줄들이 사지에 걸려 마구 헝크러진 채 요상한 자세로 엉거주춤 서있다. 토미오카는 한 쪽 다리가 공중에서 꺾인 채 남은 발 하나로만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탄지로에게 말을 걸었다.
“탄지로. 정신이 드나?”
여기서 대답을 못하면 햇볕 쬐기 한 시간 연장이다. 대답을 하면,
“하아, 하아.... 네.....”
성대가 긁힌 것마냥 갈린 목소리가 옅게 흘러나왔다. 토미오카는 완전히 축 늘어져 고개도 채 들지 못하는 탄지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슬쩍 몸을 낮추었다. 드리워진 검붉은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면,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 보인다. 눈물인지 타액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핏물과 섞여 턱 끝을 타고 흘러내리고, 타들어간 피부는 부글부글 끓어올라 재생과 훼손을 번복하고 있다. 여전히 실시간으로 햇볕에 타고 있는건지 눈꺼풀의 살이 녹고 있는 걸 보면 육체의 오니화는 풀리지 않은 것 같지만, 대답은 했으니 정신은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슬슬 풀어줘도 괜찮겠지. 토미오카는 확실한 확인을 위해 탄지로의 턱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큿... 윽.”
그 탓에 햇볕을 정통으로 받은 탄지로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돌려 보면, 드러난 얼굴은 평상시의 탄지로가 아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와 시뻘겋게 물든 각막,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것은 인간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날카로운 송곳니. 어깨도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포박줄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날이 서있는 손톱을 자신에게로 휘둘렀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잘 억제하고 있다.
토미오카는 검을 내려놓고 줄을 풀었다. 양 팔과 양 다리를 묶어놓았던 포박줄은 대부분이 헐거워져 있었다. 탄지로가 작정하고 끊어내려 했다면 진작에 끊어졌겠지. 분명 오니의 피가 안에서 날뛰는데도 포박줄에 묶여있도록 자신을 억제한 거다.
‘많이 성장했구나, 탄지로.’
도대체 이 상황에서 왜 성장 얘기를 하는 건지 1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기특하다는 표정-무츠츠 하는 그 표정-을 지으며 지탱하던 줄이 없어져 그대로 고꾸라지려는 탄지로의 몸을 가뿐히 받아냈다. 품 안에 쑥 들어오는 어린 몸은 완전히 익어버린 듯 후끈후끈하다.
토미오카는 한 팔에 탄지로를 안아들고서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곳엔 찬물이 든 물통과 수건이 준비되어 있다. 그는 요령 좋게 탄지로를 자신과 마주보도록 정면 자세로 하여 무릎 위에 앉혔다. 살 타는 지독한 냄새가 확 풍겼지만, 그에 담벼락에 앉아있던 까마귀들도 까악 소리를 내며 울었지만 토미오카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 편안한 자세로 맥아리 없는 몸뚱이를 제 몸 위로 쓰러지게 한 뒤,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목부터 닦기 시작했다.
철벅철벅.
“으으... 차가워........”
.......역시 한 손으로 수건을 짜는 건, 악력으로 칼날을 붉게 물들였다해도 힘들단 말이지. 애초에 토미오카는 풍주인 시나즈가와와 칼날을 부딪치는 것으로 붉게 만든 거지 혼자서 악력으로 해낸 게 아니다.
수건으로 닦아내는 게 아니라 찬물을 흘려보내는 수준으로 수건질을 하고 있으려니 탄지로가 기절한 와중에도 찹다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물론 토미오카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쨌든 몸을 식혀주는 게 급선무니까, 수건으로 닦든 찬물을 붓든 중요한 건 그 효과다. 오니의 피가 가라앉고 인간으로 돌아올 때 체온이 과하게 높은 상태면 열사병을 일으킨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가움이니 감수해야지-이 남자는 계속되는 출혈을 막는답시고 상처난 부위를 불로 지지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물이 흥건한 수건으로 가급적 화상 입은 곳을 피해 닦고 있노라면, 그 자리가 서서히 아무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번을 보아도 경이적인 재생능력. 등줄기를 닦고 올라와 제 어깨에 파묻고 있는 얼굴을 돌려 보면, 살이 녹아 짓뭉게졌던 눈꺼풀은 어느새 깨끗하게 나아있다. 기유는 이제 핏자국만 남은 어린 뺨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탄지로가 돌연 오니화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 오니가 된 그는 한밤중에 토미오카 저택을 방문했다. 말이 방문이지, 거의 구르듯이 쳐들어온거나 다름없었다. 그 무렵 토미오카가 숙면을 취하는 게 영 익숙치 않아 늦은 밤까지 뒤척이고 있었던 것이 어떻게 보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등을 피가 나도록 물고 나타난 탄지로의 모습에 조금 많이 놀랐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빨리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탄지로가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수주저택으로 달려온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만약 제 몸에 일어나는 이상사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면, 네즈코와 젠이츠와 이노스케가 있는 집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이후 우부야시키 나리한테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해 얻은 결론은, ‘탄지로 내부에 잔류해있는 아직 중화되지 않은 오니의 피가 일시적으로 활성화된 것’ 이었다. 탄지로의, 아니 카마도 가 사람들의 체질이 오니의 피와 잘 맞았기 때문에 나타난 일종의 부작용인 것이다.
[탄지로 씨의 오니화는 단발적인 것으로 추측 되어요. 시간이 지나 체내에서 완전히 희석되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시노부의 뒤를 이어 약제사가 된 아오이로부터 최종 의견을 받은 탄지로는 당분간 수주저택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탄지로는 ‘또 기유 씨한테 신세를 지네요.’ 라고 면구스럽다는 듯이 말한 것 치고는 토미오카가 그러라고 한 당일날 바로 짐을 싸들고 들어왔다. 언제봐도 행동력이 참 빠른 아이다. 토미오카는 생각했다.
당시 토미오카 심정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음, 상관없다는 말은 좀 무뚝뚝하고.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 그게 탄지로가 오니화 할때마다 햇볕에 말려 반죽여놓는 역할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재고했을지도 모르지만-재고했다고 해도 같은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그땐 거기까지 미처 생각이 안 닿았고.
그렇잖아도 저택에서 보내는 평화롭고 한가로운 날들에 낯설어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는 원래 저택에서도 늘상 정복을 갖춰 입고 24시간 대기 상태를 유지해왔다. 기둥들은 일반 대원과는 달리 임무량이 월등히 많았고 갑자기 호출 당하는 일도 빈번했으며 개인적인 용무로 돌아다니는 일도 많았기에 실상 그가 이 저택을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 적은 드물었다. 쉬는 공간..... 이라기보단 대기 장소 쯤으로 여겼었지. 무엇보다 이 저택을 자신이 아닌 다른 수주(水柱)의 몫이라 생각해왔던 그로서는 사실, 지금까지도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어색함도 탄지로와 네즈코들이 종종 찾아오면서 많이 해소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신도 제 집이라 여기지 않는 저택을 대문을 넘어오기가 무섭게 제 집처럼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 부엌에 들어가도 될까요부터 시작해서 뒷간, 창고, 자신은 있는 줄도 몰랐던 뒷마당에 토굴까지 찾아내 헤집고 다녔으니.... 그 와중에 문을 열때마다 공손하게 ‘실례해도 괜찮을까요?’ 라고 물어봐와서, 얼떨결에 따라다니던 통에 집구경 한번 거하게 했다.(?) 이후로도 이어지는 탄지로와 네즈코의 방문 덕택에 토미오카는 이 저택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제법 손을 탄 저택 내부는 사람 냄새가 스며들었고 사람 사는 공간처럼 보이게 됐다. 그렇게 토미오카도 슬금슬금 정을 붙이게 되었다. 이 저택을 ‘언젠가 떠나야할 곳’이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토미오카에게 있어 탄지로와 네즈코의 존재는, 이 저택을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그런 존재가 알아서 제 집에 묵어준다는데 불만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한 지붕을 노나쓰며 지내온 것도 넉달 째에 접어든다. 넉달 동안 세 번, 탄지로의 오니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토미오카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탄지로 안에 남아있는 오니의 피가 많이 중화되었다고 말이다.
“어라.... 기유... 씨?”
“일어났나.”
반짝, 하고 품 안에 탄지로가 눈을 떴다. 토미오카는 다른 사람이 봐도 부담스러울만치 뚫어지게 탄지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탄지로는 별로 놀란 기색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잠긴 목소리다. 아까 전에 들었던 갈린 목소리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본래 목소리로 멀쩡히 말한다. 완전히 회복했다는 의미다. 토미오카는 탄지로의 얼굴에 묻어있던 마지막 핏자국을 꼼꼼하게 닦아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큰 신세를 졌네요. 혹시 제가 날뛰는 동안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으셨죠?”
“없다. 너야말로 몸은 다 회복 됐나.”
“음, 네. 눈도 잘 보이고 혀도 잘 굴러가고 손톱도 어디 안 빠졌고 멀쩡합니다. 이게 다 기유 씨가 상냥하게 막아주신 덕분이에요.”
글쎄.... 네가 결박 당해있던 모습을 봤다면 젠이츠나 젠이츠나 젠이츠가 질겁하지 않았을까? 거기 어디에 ‘상냥’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냐고 태클을 걸지 않았을까? 그러나 현재 이 자리에는 젠이츠가 없었고. 토미오카는 활짝 웃으며 말하는 탄지로에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는 탄지로와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자신의 눈으로 스캔하듯 훑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군. 본인은 멀쩡하다고는 했지만 손목에 결박했던 자국이 남아있다. 탄지로는 너덜너덜하고 축축해진 옷을 내려다보고는 갈아입어야겠다고 중얼거리며 토미오카의 무릎 위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자세가 불편했는지 눈을 뜨자마자 ‘.......안 불편하세요?’ 라고 물어왔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다-정말로 단지 불편했기 때문일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민망스러웠던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아까 ‘강해진다’ 라던가 ‘강하고도 순수한 분노는....’ 이라고 중얼거리시는 걸 들었어요. 그 말들이 머릿속에 콱 박혔는데, 그래선지 정신이 좀 더 빨리 깬 것 같아요.”
“?!”
하마터면 물통을 놓칠 뻔했다. 탄지로가 멀쩡하게 제 손으로 옷을 갈아입는 걸 확인하곤 물통을 들고 일어나려던 토미오카는 화들짝 놀라 눈을 꿈뻑였다. 대충 ‘그걸 들었어.....?’ 하는 몸짓이다. 아니, 그 전에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입 밖으로 나불대고 있었던 건가, 나.
“왜.... 그게 들렸지?”
“음.... 아마 며칠 전에 우즈이 씨한테서 ‘뭐야, 그럼 너도 토미오카가 너희 남매를 구해준 이유를 모른단 말이야?’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제가 ‘오니를 많이 헤치우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라고 말했더니 ‘토미오카는 햇병아리한테 그런 걸 기대하고 입대시킬 놈이 아니야’ 하면서 엄청 웃으셨거든요. 그래서 요즘 그 이유를 찾느라 기유 씨한테 엄청 집중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요근래 그렇게 날 뚫어져라 쳐다봤던건가..... 토미오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니의 피와 작렬하는 태양빛에 괴로워하면서도 내 잠꼬대를 놓치지 않았다니, 왠지 칭찬해줘야 할 것 같은 집중력이지만 왠지 칭찬해주고 싶지 않다. 토미오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의 띠까지 조여맨 탄지로는 그대로 툇마루에 무릎 꿇고 앉아선 눈을 반짝이며 토미오카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말을 꺼냈다는 건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미였구나..... 토미오카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네즈코가 너를 잡아먹지 않았으니까.”
“? 그게.... 저희들을 구해주신 이유예요?”
토미오카는 카마도 남매를 만나기 직전에도 그들과 처지가 비슷한 형제를 만났었다. 오니가 된 동생에 의해 형이 잡아먹혔지. 그런 일들은 전에도 몇 번이고 보아왔다. 토미오카 입장에서는 네즈코의 그 잠깐의 행동이, 카마도 남매가 매우 특이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탄지로를 귀살대에 입적시킨 것은 아니지만.
“넌 그 날 내가 널 구해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아. 결과적으로 난 네 가족을 구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널 귀살이라는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만든 자다.”
토미오카는 어떤 경유로든 오니를 겪은 자는 인간사회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당장 자신부터가 그 예였다. 오니와 마주친 그 순간부터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앞으로의 삶을 휘어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떼어낼 수 없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하여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올테니까. 오니로부터 빚어진 끔찍함, 이라는 것은. 공포감이었고. 소중한 누이가 오니에게 잡아 먹히는 걸 멍청하게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던 무력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고. 징조도 없이 치밀어오르는 맹렬한 분노였다. 그 감정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기에, 살아남더라도 머지 않아 이성이 잡아 먹히고 만다.
그 기억에 사로잡힌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컸다. 토미오카가 처음 그 차이를 깨달았던 때는, 오니에게 습격 당해 누이를 잃고난 직후였다. 집안에 일어난 변에 달려온 친족들은 어린 그의 말을 듣고는 그저 누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마음에 병이 생긴 불쌍하고 귀찮은 아이로 단정 지었다. 그들은 아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더러는 어째서 그런 좋지 않은 얘기를 하냐며 꾸짖었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않았다. 토미오카는 오니를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의 차이를 아주 잘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오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사회로 복귀하는 게 힘들다고 했지 불가능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가능했다.
[죽은 인간이 되살아날 일은 없으니, 언제까지고 그런 일에 연연하지 말고, 하루 벌어 하루 살며 조용히 살면 되잖아.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러고 사는데, 왜 너희는 그러질 않아?]
단순한 형태의 차이다. 자신처럼 오니를 겪고난 뒤 오니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된 자가 있는가 하면,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오니를 외면한 자도 있고, 오니에게서,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토미오카는 그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니한테 소중한 이들을 빼앗기고 이길 수 없음에 무릎 꿇은 자들이 아니라, 오니한테 자신의 삶까지 함락 당하지 않은 자들이니까.
오니에게 당한 자들이 무조건 위험한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토미오카의 지론은 그러했다. 그는 귀살대의 기둥으로써 오랫동안 많은 임무를 맡으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일들도 있었다. 오니한테 죽을 뻔한 아이를 살렸고, 그 오니는 제 자식이었다며 왜 죽였냐고 그에게 돌을 던지던 여자도 있었다. 그 오니한테 약혼녀가 잡아먹혔다며 자신이 그 복수를 할거라고 분노하던 남자도 있었고, 오니를 보고 동생이니까 인간으로 되돌릴 거라고, 자기를 믿어달라고 하던 아이는 그가 막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살리는 것’과 ‘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토미오카는 살릴 수 있을지언정 구하지는 못한다. 그들 각자에게 필요한 구원이 어떤 것인지 그는 모른다. 감히 그걸 구분하여 길을 제시해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눈앞에서 오니가 된 동생에 의해 형이 죽고, 그 동생을 제 손으로 죽이던 날, 토미오카는 깨달았다. 모든 말들이 다 부질없다고 말이다. 결국 제 위로 쏟아지는 모든 불합리한 비극을 견뎌내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혓바닥을 놀리는 것으론 이 슬픈 현실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심심한 위로의 말조차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속을 불태우는 분노도, 복수심도, 삶에 대한 집착과 이유도, 해탈도 없어진 그에게 오니 사냥꾼으로써의 하루란 끝나지 않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도 구할 수 없다. 그러니 그저 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오니를 죽여나갈 뿐.
토미오카는 지금도 생생한 새하얗게 눈발이 날리던 그 날을 떠올린다. 탄지로와의 첫만남이다. 그 날도 넌 이렇게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여동생을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첫만남이 이 끝나지 않는 하루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던 셈이지만, 그때의 자신은 타인에게 머리를 박고 부탁할 줄 밖에 모르는 소년이 이 길디 긴 악몽의 연쇄에 종지부를 찍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었지.
당시 자신이 탄지로의 모습에서 보았던 것은 무력했던 과거의 나 자신. 그리고 탄지로를 지키려는 네즈코의 모습에서, 오니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던 누이를 보았다. 토미오카가 카마도 남매를 거둬들인 이유는 단지 그뿐이었다.
“난 딱히 상냥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네가 그렇게 오해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게 말하면 네즈코는 무사히 인간으로 돌아왔고 저도 멀쩡히 살아남았으니 결과적으로 기유 씨가 구해준 게 맞는데요?”
쓴 뒷말을 내뱉고 돌아서려는데 탄지로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봐요. 이렇게 오니화하는 절 막아주고 계시고, 몸도 챙겨주시잖아요. 포박 자국이 남은 것도 신경써주시고. 이걸 보고 어떻게 상냥하지 않다고 오해를 해요?”
“난.... 그,”
“설령 제가 그렇게 멋대로 오해하고 있다고 해도 기유 씨가 부정하실 이유는 없어요. 왜냐하면.... 음..... 전 이미 기유 씨를 상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후에 절 다치게 하더라도 이유가 있겠거니 할 것 같거든요.”
“........”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탄지로는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잘했지만 말문이 막히게끔 조절하는 것도 잘했다. 토미오카는 입을 다문채 자신을 일직선으로 바라보는 곧고 투명한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긴 듯 한참을 내려다 보았다.
그저 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오니를 죽이는 게 끝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구하는 것 없이 그저 오니의 잿가루만 손에 쥔 채 끝날거라 생각했다. 토미오카에게 귀살대란 그런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오니와 싸우다가 살아남으면 저택에서 대기하고 그 다음 오니를 벤다. 살아있으니 오니를 죽인다. 죽어서야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점차 두려운 것에서 머지 않아 당도할 곳으로 바뀌었다. 죽음이란 물과 같은 것. 언젠가 다가올 거대한 흐름이자 물줄기의 끝. 귀살대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거대한 물줄기에 몸을 맡기는 것과도 같았다.
토미오카는 탄지로를 귀살대로 끌어들인 것에 후회는 없었으나 약간의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지도 몰랐을 어린 소년을 이겨내지 못하면 죽을 뿐인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에 대해서. 내 멋대로의 판단이 이 아이를 거스를 수 없는 물줄기에 몸을 맡기도록 만든게 아닐까 싶어서.
“나는.... 네가,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 물줄기를 거스르는 거대한 생명력을 보았을 때,
그것을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기유 씨 덕분인걸요.”
토미오카는 탄지로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니화 직후 살짝 여윈 뺨이 보인다. 밥을 많이 먹여야겠다. 포박 자국이 남은 곳도 약을 발라주어야겠고. 찬 물에 젖어 체온이 정상화되다 못해 뚝 떨어져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덥혀야겠다. 목욕물을 데우고 갓 지은 따끈한 밥을 먹고 푹신한 이불에 감싸두자. 다음 날이 되면 시장에 나가자. 시장에 나가서 먹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사고, 갖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갖자. 그렇게 짐을 한 바구니 싸서 집 안에 채워넣으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던 집도 사람 사는 곳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오니를 베어내면서 찾았던 그것. 하나뿐인 누이와 하나뿐인 친우에게서 받았던 그것. 무언가를 지켜내는 것. 구해내는 것. 자신도 무언가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랬다. 마지막에 이 손에 남는 게 오니의 잿가루만이 아닌 사람의 손이길 바랬다.
오랜 시간 연마해온 남자의 잔잔한 수면과 같은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토미오카는 그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을 말끄롬히 올려다보는 탄지로의 맑은 눈동자에 가만히 입술을 내렸다.
“너는 정말.... 햇볕 같구나.”
이런 나에게조차 살아갈 힘을, 따사로운 빛을 내려주는 존재.
세 번째 종지부가 뭐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